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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성 해자에 대한 이야기

철준이 0 49

1. 월성 해자

- 월성 해자는 경주 월성의 외곽을 둘러싼 일종의 방어시설을 가리킨다. 남천을 자연해자로 활용하고 나머지 부분에는 인공해자를 조성함으로서 자연해자와 인공해자가 결합된 모습을 갖추고 있다.


월성 해자 전경.png 월성 해자에 대한 이야기
< 공중에서 바라 본 월성 전경 / 출처 : 월성해자 발굴조사보고서 Ⅲ -사진-(2011) >


  

2. 월성 해자의 조성 시기

- 월성 해자가 처음 조성된 시기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명확하게 밝혀진 바가 없다. 다만 남아있는 기록과 최근까지의 발굴 조사 내용을 통해 어느 정도의 추측은 가능하다.

 

 『삼국사기』에는 101년 2월 월성을 쌓고 같은 해 7월 금성에서 월성으로 거처를 옮겼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이는 월성 해자가 빠르면 101년에 조성되었을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월성 축조 기록.png 월성 해자에 대한 이야기


 반면 발굴 조사의 내용은 해자가 101년보다도 늦게 조성되었을 가능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추후에 자세히 이야기하겠지만 월성 해자는 총 3단계에 걸친 변천 과정을 보이는데 이 가운데 1단계의 층에서 이간투창고배, 단각고배, 단판연화문수막새 등 5~7세기로 편년되는 유물이 주로 확인되고 있기 때문이다. 


수혈해자층에서 발견된 유물들.png 월성 해자에 대한 이야기

< 수혈해자 출토 유물 / 출처 : 신라 왕궁 월성(2018) >

 

 이러한 내용들을 종합해 보면 월성 해자는 대략 5세기 대에 처음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3. 월성 해자의 종류와 변천 과정

1) 월성 해자의 종류

- 월성에 조성되었던 해자는 총 3가지로 분류해 볼 수 있다.


해자 구분.png 월성 해자에 대한 이야기
< 월성 해자의 종류 / 출처 : 신라 궁성을 지키는 월성해자(2012) >


 첫 번째는 수혈해자로 월성 해자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에 조성되었던 해자이다. 완만한 경사를 두어 땅을 파고 외곽에 일정 간격의 목재 기둥들을 배치했던을 것으로 추정된다.

 

 두 번째는 연못형해자로 기존의 수혈해자를 대체하여 새롭게 등장한 해자이다. 일부에서는 여전히 목재 기둥 구멍이 확인되는 등 기존 수혈해자 때의 모습이 남아있기도 하지만 냇 돌을 이용하여 조성되었다는 점에서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또한 수혈해자는 도랑과 같이 하나로 길게 연결된 반면 연못형해자는 각각의 독립된 담수부들이 입수부와 출수부에 의해 연결된 모습을 보인다는 점에서도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1,2차 석축해자.png 월성 해자에 대한 이야기
< 위가 냇돌을 이용한 연못형해자이고 아래가 할석을 이용한 석축해자이다. / 출처 : 월성해자 발굴조사보고서 Ⅲ -사진-(2011) >


 마지막 세 번째는 석축해자이다. 기존의 연못형해자를 대체하여 등장한 해자로 목재 기둥 구멍은 더 이상 확인되지 않으며 해자 조성 시 사용되었던 석재도 냇 돌에서 잘 다듬은 활석으로 대체된 모습을 보인다.

 

* 여기서는 월성 해자를 3가지 종류로 구분하였지만 연못형해자와 석축해자 모두 석재를 사용했다는 점에서 최근에는 석재 사용 유무에 따라 단순히 수혈해자와 석축해자로 구분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2) 월성 해자의 변천 과정

초기 월성은 자연구릉이란 지리적ㆍ입지적 이점을 최대한 활용하여 별다른 해자시설을 갖추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5세기 중후반대에 들어 내부적으로는 김씨 왕위 세습의 고정화에 따른 왕권 강화가 이루어지고 외부적으로는 왜와 고구려의 잦은 침입이 이루어지면서 수도와 월성에 대한 대대적인 정비가 필요해지게 되었다. 


자비소지마립간 대의 침략.png 월성 해자에 대한 이야기
자비ㆍ소지마립간대의 왜와 고구려의 침략회수 / 출처 : 신라 월성의 성격과 변천(1998) >


 이러한 필요성에 따라 월성의 방어적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월성 성벽이 수리되고 월성 주변으로는 수혈해자가 들어서게 되었다.

 

삼국사기 기록.png 월성 해자에 대한 이야기


 이후 월성 해자는 삼국통일기에 들어 또 한 차례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대외 정복사업을 완료한 신라는 문무왕 시기에 들어 체제 정비의 일환으로서 왕경에 대한 대대적인 정비와 토목사업을 벌여 나가기 시작했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월성 해자에 대한 전면적인 정비도 함께 이루어진 것이다.

 

 정비 과정에서 기존 수혈해자들은 폐기되었고 이를 대체하여 각각 입ㆍ출수구 시설로 연결된 석축해자들이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석축해자도 시간이 지남에 점차 필요성이 떨어지면서 축소되어 갔으며 마침내 9~10세기 대에 들어서는 폐기 단계에 이르게 되었다.

 

 정리하자면 5세기 대에 월성을 둘러싼 방어용 시설로써 처음 조성되었던 월성 해자는 삼국통일기에 들어 석축해자로 변화하여 계속 사용되다가 9~10세기 대에 들어서는 폐기 단계로 나아갔다고 볼 수 있겠다.

 

 

4. 월성 해자의 정비와 복원

- 문화재청과 경주시는 월성을 둘러싼 해자 6기에 대한 정비ㆍ복원 계획을 새롭게 발표하였다. 현재 가장 잘 남아있는 석렬을 기준으로 해서 담수 석축해자의 형태로 월성 해자를 정비ㆍ복원하겠다는 것이다.

 

 현재 월성 해자의 정비ㆍ복원 공사는 2019년 3월, 착공식을 거행한 이래 차질 없이 진행 중에 있다고 한다.

 

해자 복원.jpg 월성 해자에 대한 이야기

< 복원 조감도 / 출처 : 동아일보 >

 

 

5. 주요 발굴

1) 1984~1985년 월성 해자 시굴조사

1980년대 초 경주시는 월성대공원을 조성하고자 하는 계획을 수립, 해당 계획의 일환으로 월성 주변에 대한 시굴조사를 추진하였다. 시굴조사 결과 월성 해자 및 다수의 건물지 등이 확인되었고 이는 추후에 진행될 장기적인 조사 계획의 수립에 있어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2) 1985~1989년 월성 해자 발굴조사 

- 1984ㆍ1985년 시굴 조사 이후 이루어진 첫 발굴조사이다. 조사는 1985년부터 1989년까지 월성 동편(88), 월성 서편(86), 월성 북편(85-86, 89-90), 계림 북편(88-89) 등을 대상으로 진행되었다. 다만 전면 조사가 아닌 부분적인 발굴조사로 진행되어 대략적인 해자의 규모와 형태만을 파악하는데 그쳤다.


90-95 발굴.png 월성 해자에 대한 이야기
< 월성 해자 년도별(95년까지) 조사지역 / 출처 : 월성해자 발굴조사보고서 Ⅱ -본문- (2004) >


 먼저 월성 동편(‘나’ 구역)에서는 ‘ㄱ'자 모양의 석축해자가 확인되었는데 성벽 쪽은 부드러운 곡선형으로, 그 반대쪽은 직선형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해자 내부의 석열로 보아 2~3 차례의 축소ㆍ보수가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여진다. 해자의 양측으로 입수구와 출수구도 확인되었다. 

 

석축해자 1.png 월성 해자에 대한 이야기

< ‘나’ 구역 석축해자 평면도 / 출처 : 월성해자 발굴보고서 Ⅰ -도면ㆍ사진- (1990) >

 


< '나' 구역 석축해자 노출 상태 / 출처 :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사이트 >

석축해자 1-2.png 월성 해자에 대한 이야기
< '나' 구역 석축해자 노출 상태 / 출처 : 월성해자 발굴보고서 Ⅰ -도면ㆍ사진- (1990) >


 월성 북편(‘다’ 구역)에서도 독립된 형태의 연못형해자들이 다수 확인되었으며 각각 1ㆍ2ㆍ3호 해자로 명명되었다. 다만 1ㆍ2호 해자를 구분하는 둑 아래에서 수혈해자의 흔적이 확인되어 본래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으나 추후에 분리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해자들은 모두 성벽 쪽은 부드러운 곡선형으로, 반대쪽은 거의 직선형의 형태를 띠고 있었으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축소 되어갔던 것으로 보인다. 해자의 축소 과정에서 매립된 부분은 건물지 등을 축조하여 새롭게 활용하였던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1호 해자 도면.png 월성 해자에 대한 이야기
< 1호 해자 평면도 / 출처 : 신라 궁성을 지키는 월성해자(2012) >


2호 해자 도면.png 월성 해자에 대한 이야기
< 2호 해자 평면도 / 출처 : 신라 궁성을 지키는 월성해자(2012) >

3호 해자 도면.png 월성 해자에 대한 이야기
< 3호 해자 평면도 / 출처 : 신라 궁성을 지키는 월성해자(2012) >


3호 해자 석열.png 월성 해자에 대한 이야기
< 3호 해자에서 확인된 석열 / 출처 : 월성해자 발굴보고서  -사진- (2004) >


 한편 일부 구역에서는 목재 구조물(판자로 만든 벽) 흔적이 확인되었는데 이는 당시 신라인들의 목재 가공 기술을 연구하는데 있어 중요한 정보를 제공해줄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왜 돌이 아닌 판자를 이용해 벽을 만들었는지에 대한 추가적인 연구도 함께 필요해 보인다. 


1호 해자 판자벽.png 월성 해자에 대한 이야기
< 1호 해자에서 확인된 목재 구조물 흔적 / 출처 : 월성해자 발굴보고서 Ⅰ -도면ㆍ사진- (1990) >


다 구역 판자벽.png 월성 해자에 대한 이야기
< 최근 월성 북편('다' 구역)을 보완 조사하면서 새로 확인된 목재 구조물 / 출처 : 신라 왕궁 월성(2018) >


 유물로는 와전류, 토기류, 금속류 등의 다양한 유물들이 출토되었는데 이 가운데 당시의 정치사회상을 짐작해볼 수 있는 직접적인 정보들을 품고 있는 목간들도 다수 출토되어 주목을 받았다.


전대등이란 명칭이 확인된 목간.png 월성 해자에 대한 이야기
< ‘전대등(典大等)’이란 명칭이 등장하는 목간 / 출처 : 월성해자 발굴조사보고서 Ⅱ -고찰- (2006) > 


종이 구입과 관련한 목간.png 월성 해자에 대한 이야기
< 종이 구입에 대한 내용이 들어가 있는 목간 / 출처 : 월성해자 발굴조사보고서 Ⅱ -고찰- (2006) > 



3) 1990~1995년 월성 해자 발굴조사

1990년부터 1995년까지 계림 남편(91), 첨성대 남편(92-93), 월성 북서편(94-95), 월성 동편(‘나’ 구역, 91) 등을 대상으로 진행되었던 발굴조사이다.

 

90-95 발굴.png 월성 해자에 대한 이야기
< 월성 해자 년도별(95년까지) 조사지역 / 출처 : 월성해자 발굴조사보고서  -본문- (2004) >

 발굴 대상지 가운데 월성 해자와 관련된 곳은 월성 동편(‘나’ 구역)으로 해당 지역에서는 성벽과 평행하게끔 일정한 한격을 두고 설치된 4줄의 석열이 확인되었다. 확인된 4줄의 석열은 모두 냇 돌을 이용하여 조성되었으며 형태로 보아 점차 규모가 작아지다가 연못형해자의 단계에서 그대로 폐기된 것으로 추정된다.


나 구역.png 월성 해자에 대한 이야기
< '나' 구역 해자 평면도 / 출처 : 월성해자 발굴보고서 Ⅱ -본문- (2004) >

나 구역 4줄의 석렬.png 월성 해자에 대한 이야기

< ‘나’ 구역에서 확인된 4줄의 석열 / 출처 : 월성해자 발굴조사보고서Ⅱ -사진- (2004) >


 

4) 4호 해자 발굴조사

- 1999년부터 2006년까지 '다' 구역 내에 위치한 월성 4호 해자를 대상으로 진행되었던 발굴조사이다. 발굴조사결과 3차례에 걸친 해자의 축조 모습과 입수부와 출수부, 또한 수혈해자의 흔적 및 목재 기둥 구멍들이 확인되어 월성 해자의 형성과정과 변천과정을 파악하는데 있어 많은 정보를 제공해 줄 것으로 기대되었다.

 

* 1차 냇돌, 2차 할석, 3차 냇돌과 할석

 

4호 해자 배치도.png 월성 해자에 대한 이야기

< 4호 해자 평면도 / 출처 : 월성해자 발굴조사보고서 Ⅲ -본문-(2011) >

 

4호 해자 수혈해자와 목책.png 월성 해자에 대한 이야기

< 수혈해자의 흔적과 목재 기둥 구멍 / 월성해자 발굴조사보고서 Ⅲ -사진-(2011) >

 

4호 해자 석축해자.png 월성 해자에 대한 이야기

< 1~3차 해자의 북쪽 전경(위에서 아래로 1, 2, 3의 순서) / 출처 : 월성해자 발굴조사보고서 Ⅲ -사진-(2011) >

 

4호 해자 입구수.png 월성 해자에 대한 이야기

< 입수구 / 출처 : 월성해자 발굴조사보고서 Ⅲ -본문-(2011) >

 

4호 해자 출구수.png 월성 해자에 대한 이야기

< 출수구 / 출처 : 월성해자 발굴조사보고서 Ⅲ -본문-(2011) >

 

 한편 4호 해자에서는 와전류, 토기류, 금속류 등의 다양한 유물들이 발견되었는데 시대양상은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확인되었으나 삼국시대~통일신라시대의 유물에 집중된 모습을 보였다.


4호 해자 출토 유물.png 월성 해자에 대한 이야기
< 4호 해자 출토 유물 / 월성해자 발굴조사보고서 Ⅲ -본문-(2011) >

 이 가운데 당시 신라인들의 놀이문화와 의례문화를 엿볼 수 있는 서로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토우 3점과 신라인들의 흔적으로 추정되는 발자국 유구가 발견되어 주목을 받았었다.

 

4호 해자 토우.png 월성 해자에 대한 이야기

< 4호 해자에서 출토된 토우 / 출처 : 월성해자 발굴조사보고서 Ⅲ -본문-(2011) >

 

4호 해자 발자국.png 월성 해자에 대한 이야기

< 발자국 유구 / 출처 : 월성해자 발굴조사보고서 Ⅲ -본문-(2011) >

 

4호 해자 발자국 세부.png 월성 해자에 대한 이야기
< 발자국 유구 세부 / 출처 : 월성해자 발굴조사보고서 Ⅲ -사진-(2011) >


5) 5호 해자 발굴조사

- 2007년부터 2010년까지 '다' 구역 내에 위치한 월성 5호 해자를 대상으로 진행되었던 발굴조사이다. 확인된 해자 가운데 규모는 가장 작았으나 4차례에 걸친 해자의 축조 모습이 확인되었고 또 하부에서 수혈해자의 흔적이 발견되어 앞 선 4호 해자와 마찬가지로 월성 해자의 형성과정 및 변천과정을 파악하는데 있어 많은 정보를 제공해 줄 것으로 기대되었다.


* 1차 냇돌, 2차 냇돌, 3차 할석, 4차 냇돌과 할석

 

5호 해자 배치도.png 월성 해자에 대한 이야기

< 5호 해자 평면도 / 출처 : 월성해자 발굴조사보고서 Ⅳ(2012) >

 

5호 해자 주혈.png 월성 해자에 대한 이야기

< 해자 외곽에서 발견된 목재 기둥의 흔적 / 출처 : 월성해자 발굴조사보고서 Ⅳ(2012) >

 

5호 해자 석축.png 월성 해자에 대한 이야기

< 1~3차 해자의 모습(오른쪽에서 왼쪽으로 1, 2, 3의 순서 / 출처 : 월성해자 발굴조사보고서 Ⅳ(2012) >

 

 한편 5호 해자에서도 4호 해자와 마찬가지로 와전류, 토기류, 금속류 등의 다양한 유물들이 발견되었는데 시대양상은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확인되었으나 삼국시대~통일신라시대의 유물에 집중된 모습을 보였다.

 

5호 해자 연화문수막새.png 월성 해자에 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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